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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024. 4. 4.

성경본문 보기

요한복음 13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이를 일명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데,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이유 혹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겸손과 섬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마 6:16). 이러한 고백이 있은 후에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 만에 살아나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마 16:21). 그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종종 언급하셨으나(마 17:20 ; 눅 18:33)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막 9:32 ; 눅 18:34) 또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죽음에 대해 말씀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내용인즉 ‘누가 크냐’(막 9:34)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막 9:35). 한 마디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마 23:11).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욕망에 눈과 귀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다스릴 왕국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고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이 제일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8, 19 ; 막 10:33, 34). 그때 세베대의 아들들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서 절하며 자신의 두 아들이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청탁을 했습니다(마 20:21). 마가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막 10:35), 아마 그들이 어머니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로 마리아의 동생 즉 예수님의 이모로 알려져 있습니다(마 27:56; 막 15:40; 요 19:25). 그러니까 요한과 야고보는 혈연관계를 이용해서 예수님께 인사 청탁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몹시 분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 27) 그리고 겸손이란 무엇인가를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르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 주신 후에 다시 자리에 앉아 제자들에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도래할 것이고 그때 자신들은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이 제일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고, 그래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자기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 사람의 발을 씻겨 주는 일은 매우 천한 일로 간주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발은 신체 가운데 제일 더러운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국립보건원에서 건강한 성인남녀 10명을 대상으로 신체 부위 14곳의 시료를 채취해 피부 곰팡이를 조사했는데, 가장 많은 종류의 곰팡이가 나온 부위는 발이었다고 합니다(출처). 더구나 당시 사람들은 샌들형 신발(막 1:7)을 신었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발이 매우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 주인이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겨 주거나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창 18:4 ; 눅 7:44).

이처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는 일은 주인이 아니라 종이, 스승이 아닌 제자가 할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며 완강히 거부했던 것입니다(요 13:8).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그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 13: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할 것을 누차 강조하셨으나 그들은 그 가르침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평생 잊지 못할 방법으로 즉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겸손이 무엇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요 13:14).

2. 구속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여 베드로에 이르시니 베드로가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기실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겸손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지만 그 속에는 구속이라는 영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영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죄인을 정결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히 9:14 ; 13:12 ; 벧전 1:19 ; 계 1:5).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어떤 죄를 지었든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 1:12). 따라서 예수님의 발 씻겨 주심을 거부하는 것은 영적으로 보혈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기에 결국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기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손발만 씻으면 되는 것처럼 이미 거듭난 사람은 또다시 중생할 필요가 없으며, 매일의 삶 속에서 짓는 죄만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요일 1:9).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목욕한 자도 발은 씻어야 하는 것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짓는 죄는 회개함으로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거짓 성도와 참 성도의 차이는 누가 죄를 지었느냐가 아니라 죄를 지은 후에 어떤 자세를 갖느냐의 차이라고 했습니다.

3. 사랑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희는 깨끗하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요 13:10).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3:11, 18). 그는 가룟이라 하는 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음에도 그를 제자로 택하신 것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 13:18).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성경은 시편 41편 9절 말씀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짐승이 주인을 차버리고 도망하는 모습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주인을 배신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때 자기를 배반한 아히도벨을 가리켜 한 말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와 결부시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을 배반한 아히도벨과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그 행보가 매우 유사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배신하였으며, 후에 모두 목을 매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삼하 17:23 ; 마 27:3-10). 그러므로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아히도벨은 가룟 유다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유다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셨고 그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 ; 눅 6:27, 35)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아울러 다른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요 13:1). 사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롬 12:20).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지만(마 5:46 ; 눅 6:32) 그리스도인은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눅 6:35).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때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이고(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이며(롬 5:8),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입니다(롬 5:10). 사람들 가운데는 의롭고 선한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롬 5: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경건하지 않은 죄인을 위해 그리고 원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증명해 주셨습니다(롬 5:8 ; 요 3:16). 사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사랑할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인이고 원수인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요 13:35).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요 15: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는 보통 낮은 자가 큰 자를 섬깁니다. 그래서 섬김을 받는 것이 출세한 것이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자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17).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은 우리의 주인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 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과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