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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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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22-39 [개역개정]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설교문 보기

오늘 본문은 유대인의 겨울 절기인 수전절을 배경으로 합니다(요 10:22). 수전절(修殿節)은 주전 167년 수리아(셀레우코스 제국)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 단 8:24 ; 11:21)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주전 164년 기슬르월(양력 11월~12월) 25일에 다시 정화하여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25일부터 8일간 지켜졌는데(외경 마카비상 4:52-59 ; 마카비하 10:5)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전절을 ‘봉헌’이란 뜻의 ‘하누카(Hanukkah)’라 불렀습니다.

이 절기에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행각이란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를 말하는데, 솔로몬 행각은 성전 안 이방인의 뜰 동편에 있었습니다. 이 행각에서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눴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기인 겨울에는 비를 피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시자 유대인들이 에워싸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요 10:23)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요 4:26)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직접 밝히신 적은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동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가 메시아, 그리스도인가,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직접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들은 충분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가리켜 인자(人子)라고 하셨는데, 이 호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요 1:1 ; 빌 2:6)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 빌 2:7). 즉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하신 사람이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서 인자는 메시아의 칭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특히 성경을 연구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종교 지도자들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인자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들 역시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요 10:25). 실제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요 6:14).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더라도 이분보다 더 많은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는가?”(요 7:31)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요 3:2).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0:26).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목자들은 자기 양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면 양은 그것이 자기 목자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요 10:3). 그래서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를 따릅니다(요 10:27). 반면에 자기 목자의 음성이 아니면 겉모습이 아무리 비슷해도 그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도망을 갑니다(요 10:5).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므로 그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양이었다면 분명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들었을 것이며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보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 아니며(요 8:47)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그를 따라갑니다(요 10:4, 27). 즉 양은 목자가 어디로 가든지 그 뒤를 따라야 하며, 그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예수님께 주신 분이 아버지시며 아버지는 모든 만물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요 10:29).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가 와서 그들을 빼앗아 갈 것이며(마 13:19 ; 막 4:15) 그들은 결국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요 10:30). 이 말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했습니다. 사람이면서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빌 2:6 ; 히 1:3).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요 1:1). 그러나 유대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유대인들도 대부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 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시 110:1 ; 요 1:1 ; 18 ; 20:28 ; 빌 2:6 등). 그럼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참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모독을 이유로 자신을 돌로 치려 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 10:34-36) 여기서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시 82:6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 82편은 당시의 왕이나 재판관 등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혹은 아는지 모르는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아 나라를 다스리고 재판하는 자들이었습니다(렘 27:6 ; 롬 13:1 등). 그들을 신들 혹은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대리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시고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들을 많이 행하셨습니다(요 10:32).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조차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인정했습니다(요 10:33).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그리스도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그를 믿지 않아도 됩니다(요 10:37).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면 예수님은 믿지 않을지라도 그 일들은 믿어야 합니다(요 10:38).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피하셨습니다. 아직 그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신 곳은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었던 요단강 건너편 베레아 지방의 베다니(요 1:28)라는 마을이었습니다(요 10:40). 이곳은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와는 다른 곳입니다(요 11:1).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다시 유대로 가실 때까지 이곳에 머무셨습니다(요 11:6).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요 10:41) 그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눅 3:16-18 ; 요 1:15-18 ; 26-34).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요 10:42). 아마 그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았을 것입니다(마 19:2).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그를 그리스도로 믿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그리고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요 8:44). 그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을 받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마 25:4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으나 유대인들은 편견과 불신으로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을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슥 7:12, 13). 금강석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로 알려진 다이아몬드를 말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마음이 완악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금강석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뀔 것입니다(겔 11:19, 20). 그러한 은혜가 아직도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기를 그래서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에 동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