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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2023. 10. 15.

성경본문 보기

역대상 2장 3절 ~ 8절 [개역개정]

3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4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5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6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니 모두 다섯 사람이요
7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8 에단의 아들은 아사랴더라

 

설교문 보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 두 아들 가운데 유다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다가 다른 형제들보다 뛰어나거나 그의 후손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보다 특별히 잘 난 것은 없습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허물 많은 인생들이었습니다. 유다의 아들들 가운데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죽은 아들이 둘이나 되고, 유다 자신은 며느리 다말과 근친상간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 중에는 마땅히 멸할 물건을 취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유다의 자손들에 대해 열거하면서 그 런 내용들을 간단하지만 가감 없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 내용을 창세기와 여호수아서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간 후 유다는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이 거주하고 있던 헤브론을 떠나 아둘람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히라라는 가나안 사람과 가까이 지냈고(창 38:1) 또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문제지만 가나안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은 더 큰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악으로 인해 이미 멸망이 예고된 자들입니다(창 15:16). 그런 자들과 친분을 쌓고 인연을 맺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고후 6:14-16).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유다는 어리석게도 가나안 사람과 친분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여자와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를 통해 세 아들 곧 엘(에르)과 오난과 셀라를 얻습니다. 유다는 맏아들 엘을 가나안 여자 다말과 혼인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엘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관습에 따라 엘의 동생인 오난과 결혼을 했습니다. 고대에는 형이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상속시키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계대혼(繼代婚) 혹은 수혼(嫂婚)이라 합니다(창 38:8). 하지만 오난은 자신을 통해 낳게 될 아들이 법적으로 자기 자녀가 아닌 형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욕심을 앞세워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으로 하나님이 보시기 악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오난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

이렇게 졸지에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결혼시키지 않자 다말은 시아버지를 통해서라도 남편의 후사를 얻고자 했습니다. 다말은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하여 딤나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창녀로 변장하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를 통하여 쌍둥이 형제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후에 베레스 가문에서 다윗 왕이 태어났고(룻 4:18-22),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마 1:1).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죄인임을 보여줍니다(롬 3:1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딤전 1:15).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롬 3:26).

유다의 후손 중에는 탐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아간이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였습니다(대상 2:7). 아간에 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 7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한 지 40년 만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다음으로 아이 성을 치기 위해 삼천 명쯤 되는 군사를 보냈습니다. 아이 성을 정탐하고 온 사람들이 '그들은 수가 적기 때문에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기 때문입니다(수 7:3). 그러나 이 보고는 잘못되었습니다. 아이 성의  주민은 12,000명이었고(수 8:25) 그중에서 출전할 수 있는 장정은 어림잡아 3, 400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아이는 해발 800m의 산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적군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2, 3000명만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은 자만심에서 비롯된 오보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이에게 패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패한 진짜 원인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바로 아간의 죄 때문입니다. 아간이 범한 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점령을 앞두고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 6:17-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에 손을 댐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로를 샀고,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무슨 일에든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입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는 말씀에서 '바치다'는 히브리어로 '헤렘(חֵרֶם)'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분리하다', '금하다' 혹은 '파괴하다'는 뜻의 '하람(חָרַם)'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어떤 물건을 분리시켜 오로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물을 의미하고(레 27:28) 전쟁 상황에서는 진멸시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뜻합니다(수 8:26). 본문 7절에 '진멸시킬 물건'이 바로 '헤렘'입니다. 그런데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마치 제 것처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죄를 범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속인 죄입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가져다가 감추었습니다(수 7:21). '감춘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하도록 속이는 행위로, 아간의 행위는 하나님을 속인 죄입니다.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아간과 같은 죄를 범했습니다(행 5:1-4). 그들은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공동체에 내놓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것을 공동체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소유를 판 값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부인 듯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입니다(행 5:2). 즉 그들의 죄는 전부를 드리지 않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가져와서 그것이 전부인 양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에 있습니다. 비록 아간이나 아나니아 부부는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속인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간이 이러한 죄를 범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탐욕 혹은 탐심은 '더 크게 혹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의미합니다. 아간은 아름답고 값나가는 물건들을 보자 그것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안목의 정욕입니다(요일 2:16). 그래서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그리고 무게가 50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가져다가 숨겼습니다. '시날'이란 '두 강 사이' 혹은 '두 개의 강이 흐르는 나라'란 뜻으로, 두 강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말합니다. 홍수 이후 아라랏(창 8:4) 근방에 거주하던 노아의 후손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정착한 곳이 시날 평지였습니다(창 11:2). 이곳은 바벨론과 동일시되는 지역으로(창 10:10 ; 단 1:2) 시날을 수메르(Sumer)로 보기도 합니다. 수메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산이란 등산할 때의 산(山)이 아니라 물건을 생산할 때의 산(産)을 말합니다(Made in Shinar). 당시 시날에서 생산된 외투는 여러 무늬가 정교하고 아름답게 수놓아진 값비싼 제품으로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고급 수입품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를 겪은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패배의 원인이 된 아간의 죄를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간과 아간이 훔친 물건들 그리고 그의 자녀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로 치고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아골 골짜기'라 명명했는데, 아골이란 '괴롭히다', '곤란하게 하다'란 뜻의 '아카르(עָכַר)'에서 파생한 명사로 '괴로움', '슬픔',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간의 죄와 그에 따른 형벌이 어떤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아간의 이름을 아갈(עָכָר , 대상 2:7)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비록 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공동체로서의 책임을 져야 했던 것처럼 불순종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에게나 좀 더 높은 지위에서, 보다 안락하고 명예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탐욕이 됩니다. 바울은 이를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탐욕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화를, 신앙보다 세상적인 것들을 더 추구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험에 빠지게 하고 올무에 걸리게 하며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듭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간이었습니다. 그는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하나님의 것을 훔쳤으며, 하나님을 속인 죄를 범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이스라엘 전체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아간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자족할 때 탐심을 버릴 수 있고,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탐심을 버리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갈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