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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2023. 2. 8.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21장 12절 ~ 17절[개역개정]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신 후 날이 저물자 베다니로 가셔서 하루 밤 묵으셨습니다(막 11:11). 이튿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당시 성전은 크게 네 개의 뜰(마당)로 나뉘었는데,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과 유대인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유대인 여자를 위한 여인의 뜰과 이방인들을 위한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방인의 뜰은 바깥뜰로 불리기도 했습니다(겔 10:5). 매매가 이뤄지고 있었던 곳은 바로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제사에 사용되는 짐승과 기름 등이 판매되었고, 성전세를 내려는 사람들을 위해 환전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성전세는 성전 유지를 위해 내는 일종의 세금으로 유대인 가운데 20세 이상이 된 남자들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바치게 되어 있었습니다(출 30:13 ; 마 17:27). 반 세겔은 노동자의 이틀 치 노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유대인들은 그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외국 화폐로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유대의 세겔로 교환해 주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돈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먼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졌습니다. 원래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감람산에 형성이 되었는데,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눅 3:2)가 성전 안 이방인의 뜰에서 시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입니다(요 18:13). 사실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성전 안에서 희생 제물을 살 수 있고 또 환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편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성전 안에서 행해진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비록 그곳이 이방인의 뜰이긴 하나 분명 성전의 일부분입니다. 그런 곳에 대제사장이 매매를 허락했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의 뜰을 성전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덜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이방인의 뜰을 매매 장소로 허락한 이면에는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상인들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말이 편의지 강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희생제물로 바칠 짐승을 가져오면 대부분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는데, 이를 감별하는 것이 제사장들입니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았으니 그들이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외부에서 반입하는 짐승에 대해서는 가급적 불합격 처리를 하도록 시킨 것입니다. 반면에 상인들이 파는 짐승들은 대부분 검열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상인들로부터 짐승을 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상인들이 파는 짐승들 중에는 흠이 있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짐승들이 제사장들의 묵인 하에 검열을 통과해서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는 흠 있고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나님을 업신여겼던 말라기 시대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말 1:8 ; 레 22:20). 이런 짐승들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환전하는 사람들로 이방인의 뜰은 성전이 아닌 시장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뜰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사 56:7]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마 21:13)고 하시며 장사하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장사하는 사람들과 결탁하여 이득을 취했던 제사장 무리들을 책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예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왕상 8:41-43). 그곳이 바로 이방인의 뜰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의 뜰이 있으나 마나 한 곳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런 곳에 시장을 개설하고 더욱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에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셨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공생애 초기에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요 2:13-16). 구체적인 진술이 조금 다른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이 공생애 초기와 말기 두 번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는 말 그대로 성전이 성전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지만 예수님 당시에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요 2:18).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는지 그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요 2:19). 당시 성전은 이두매(에돔, 막 3:8) 출신으로 유대의 왕이 된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존의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증개축한 일명 '헤롯 성전'이었습니다. 헤롯은 B.C. 19년 경부터 성전을 증축하기 시작했는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에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시자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그 의미를 알고 성경 말씀(시 16:9, 10)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요 2:22). 우리가 성막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성전은 모든 것이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롬 4:25).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입니다(요 5:24).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신 후 자신에게 나아오는 시각장애인들과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들은 장애로 인해 이방인들처럼 성전 안 뜰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 바깥뜰 곧 이방인의 뜰에 머물러야 했습니다(레 21:17-2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심으로 성전이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었던 성전을 다시 성전 본연의 기능인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외치는 어린이들을 보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은 예수를 어린아이들까지 메시아로 믿고 그를 찬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시편 8편 2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찬양받으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찬양하는 것을 막는다면 대신에 돌들이 소리를 지르게 될 것입니다(눅 19:4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헤롯 성전은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담으로 구분 지어져 있었습니다. 이를 막힌 담(엡 1:24)이라고 하는데, 만일 이방인이 그 경계를 넘어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막힌 담을 허셨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별이 없게 만드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 아닙니다(엡 2:1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는 그 어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하여 감사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