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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 바돌로매와 도마

2022. 7. 24.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0장 1절 ~ 4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설교문 보기

이번 시간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바돌로매와 도마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돌로매는 성경에 네 번 등장하는데, 모두 열 두 제자의 이름을 언급할 때입니다(마 10:3 ; 막 3:18 ; 눅 6:14 ; 행 1:13). 요한복음에는 바돌로매의 이름이 없고, 대신 나다나엘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돌로매와 나다나엘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돌로매라는 이름은 단지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이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이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서 이름을 지을 때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부르려고 했습니다(눅 1:59). 만일 그랬다면 사람들은 요한을 아버지와 구분하기 위해 '바사가랴'로 불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사도 명단에 바돌로매가 항상 빌립 다음으로 언급되었다는 점(마 10:3 ; 막 3:18 ; 눅 6:14)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나다나엘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요 21:2)은 바돌로매가 나다나엘일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참고로 갈릴리 가나에 가면 바돌로매 기념교회가 있는데, 갈릴리 가나는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바돌로매가 나다나엘이라는 전제하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나다나엘[바돌로매]

빌립이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를 데려온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시자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1:41).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거짓이나 속이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는 나다나엘의 인격과 성품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 그래서 거짓이 없고 속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런 성품과 인격을 갖게 된 데에는 말씀의 영향이 컷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으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요 1:48). 무화과나무는 비교적 크고 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드리웠기 때문에 당시의 랍비들은 이 나무 아래서 율법을 교육하거나 묵상을 했습니다. 따라서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 즉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나다나엘은 메시야의 소망을 기다리며 성경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습관이 나다나엘로 하여금 거짓이 없는 참된 성품과 인격을 갖추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며, 이 책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고 했습니다(딤후 3:16, 17). 한 마디로 성경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책인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할 것입니다.

나나다엘이 예수님으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인정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에게나 사람들에게 '참 그리스도인',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다나엘이 메시야의 소망을 기다리며 성경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으로부터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그 메시야가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여느 유대인들처럼 메시야의 소망을 기다리며 성경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나다나엘이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요 7:42 ; 미 5:2). 더욱이 나사렛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인데 그곳 출신의 사람이 메시야라고 하니 나다나엘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나사렛 같은 동네에서 무슨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그의 말을 외면했습니다(요  1:46).

사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 아니라 다윗의 고향인 유대 베들레헴이었습니다(마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만 생각을 했고 나다나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와서 보라"는 친구의 간청을 거절할 수 없어 예수님께로 갔는데, 일면식도 없는 예수님이 자신을 보자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자신을 보았다고 하시니 빌립이 말한 대로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라"라고 고백을 합니다(요 1:49). 이로써 나다나엘은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도마입니다.

2. 도마

도마는 '디두모'(요 11:16, 20, 24 ; 21:2)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 혹은 '믿음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은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문을 굳게 잠근 방 안에서 제자들은 그날의 놀라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눅 24:36). 예수님께서 자기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그제야 제자들은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후에 다른 제자들이 그날의 일을 도마에게 이야기했으나 도마는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도마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 16장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 역시 안 믿었습니다(막 16:11-13).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 도마에게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심 많은 도마'였습니다.

그로부터 팔일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던 다락방에 다시 나타나셨는데, 이때 도마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가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도마에게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도마의 고백은 이전에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라"라고 한 것과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라는 고백보다 더 완전한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도마는 예수님을 제일 처음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요 20:19-29).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고백을 하는 도마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책망하시듯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요 20:29). 사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더 복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열 두 제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 등의 이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마 14:5 ; 21:46; 막 11:32 ; 요 4:19).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서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그중에 예수님을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도마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더 적을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세례를 받고 직분을 가진다고 해서 또 매주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그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과 고백이 신앙의 기초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요 1:1 ; 빌 2:6).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 2:7).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단지 한 사람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을 때, 그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습니다. 사람이면서 어떻게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요 10:33). 그 이유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요 19:7).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요 1:14 ; 빌 2:6-8)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롬 3:23, 5:12). 사람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받을 형벌은 죽음입니다(롬 6:23). 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그 죄인을 위해 대신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대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요 1:29 ; 히 4:15 ; 히 7:26 ; 벧전 2:22).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 20:28 ; 갈 1:4).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3:16). 여기에 다른 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늘 아래에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은 오직 예수, 이 외에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행 4: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부터 진실한 믿음과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바돌로매(나다나엘)나 도마나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실한 믿음과 성품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삶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므로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확실한 믿음과 하나님과 사람에게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