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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2022. 7. 21.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9장 18절 ~ 26절 [개역개정]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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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3개 국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창 31:47 ; 스 4:8-6:18 ; 7:12-26 ; 단 2:4-7:28 ; 렘 10:11 등)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성경은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종종 헬라어로 음역된 아람어 단어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바(막 14:36), 에바다(막 7:34), 랍비(요 1:38등)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달리다굼 등(막 5:41)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고 또 하나는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구원을 받은 사건입니다. 

1. 믿음으로 신앙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계실 때에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막 5:22). 당시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대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주로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교육이나 회의 등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 회당의 관리책임자가 회당장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동장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 된 외동딸이 있었는데(눅 8:42)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을 것입니다. 그는 지역 유지에다 어느 정도 재물도 있었을 테니 돈 때문에 치료를 못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회적 지위나 재물은 딸을 살리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위해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각종 병자들을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식일에 그것도 회당에서 병을 고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회당장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해하였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인데,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생명이 위급하지 않은 이상은 안식일에 환자의 병을 고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눅 13:13).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종종 회당에서 환자들을 치료하셨고(마 12:10-13 ; 막 1:21-26 ; 3:2-5 ; 눅 14:1-4 ; 요 5:8, 9), 이로 인해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습니다(눅 13:14 ; 요 5:16).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했다가 회당장의 자리에서 해임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야이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찾아가 간청했습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9:18) 마가나 누가에 의하면 야이로의 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눅 5:23 ; 눅 8:42).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실새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때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혈루증은 비정상 자궁출혈이라고 하는데 자궁에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병입니다. 율법에서는 이 병을 나병처럼 부정한 것으로 규정했는데, 그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 모두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레 15:25, 26). 결국 혈루증 환자는 사회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가족과도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느라 고생을 했고 있던 재산도 다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병만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부정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야이로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즉시 피가 멎었고 그녀는 병이 나은 것을 느꼈습니다. 열두 해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병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나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에게는 부정한 자라는 신분의 장애물이었고, 야이로 역시 회당장이라는 신분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혈루증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9:34 ; 36).

우리에게도 넘어야 할 신앙의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야이로나 혈루증 여인처럼 신분의 장애물일 수도 있고, 마 19장에 나오는 청년처럼 재물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19:22).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학업이나 직장, 가족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과 말씀하고 계실 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야이로는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시라도 빨리 예수님을 모셔가서 딸이 죽기 전에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는데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이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 사람들은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막 5:39).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은 고치셨지만 죽은 사람까지 살리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마 8:27 ; 막 5: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막 5:36 ; 눅 8:50).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믿음을 계속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만을 데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이들 세 제자들만 데리고 동행을 하셨는데, 일명 변화산 사건 때도 그랬고(마 17: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러셨습니다(마 26:36).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는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시자 집에서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눅 8:52, 53). 그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곧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으시며 "달리다 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하시자 죽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걸어 다녔고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9:26).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요 11:25, 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앙을 견고하게 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을 흔들리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했고, 가나안을 목전에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 때문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