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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

2018. 11. 24.

저자 이우근 / 출판사 포이에마 / 발매 2009.07.31. > 상세보기

고대 그리스어[헬라어]에 '에피에이케이아(ἔπιείκεια)'란 용어가 있다. '관용(寬容)'이란 말로 번역된 이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로는 남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고(행 24:4 ; 고후 10:1), 종교상의 의미로는 자신과 다른 종교 혹은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톨레랑스(tolerantia)란 바로 종교상의 관용을 의미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라고 권면했다(빌 4:5). 어느 특정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용이 없는 곳에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빌립보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다(빌 1:17 ; 빌 4:1). 바울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관용을 제시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이다(빌 2:3). 

다툼이나 허영은 모두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에서 나온다. 성경은 이를 교만이라 부르는데, 교만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잠 13:10).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니 다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아울러 인내를 가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참지 못하면 관용을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Jean Calvin)은 관용을 '영적인 인내'라고 했다. 

저자의 지적대로 그리고 독일의 신학자 멜데니우스(Repertus Meldenius)가 외쳤던 것처럼 오늘날의 기독교는 톨레랑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In necessari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in non-necessariis libertas),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utrisque caritas)! 

· 이 글은 티스토리 '세상을 품은 참새'(2011.02.21)에 게시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