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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

예음TV/설교 2022. 7. 1.
본 문 마 8:14-22 2022년 5월 4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시 청 YouTube : https://youtu.be/cVF0bR_IrRY
KakaoTv : https://tv.kakao.com/v/428506723
본 문 마 9:9-13 2022년 5월 25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시 청 YouTube : https://youtu.be/3SNNID9pRas
KakaoTv : https://tv.kakao.com/v/429092714
본 문 마 9:14-17 2022년 6월 1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시 청 YouTube : https://youtu.be/Cupy8X5ZxNs
KakaoTv : https://tv.kakao.com/v/429263023
본 문 마 9:18-26 2022년 6월 8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설교문 보기

성경은 3개 국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창 31:47 ; 스 4:8-6:18 ; 7:12-26 ; 단 2:4-7:28 ; 렘 10:11 등)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성경은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종종 헬라어로 음역된 아람어 단어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바(막 14:36), 에바다(막 7:34), 랍비(요 1:38등)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달리다굼 등(막 5:41)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고 또 하나는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구원을 받은 사건입니다. 

1. 믿음으로 신앙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계실 때에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막 5:22). 당시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대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주로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교육이나 회의 등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 회당의 관리책임자가 회당장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동장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 된 외동딸이 있었는데(눅 8:42)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을 것입니다. 그는 지역 유지에다 어느 정도 재물도 있었을 테니 돈 때문에 치료를 못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회적 지위나 재물은 딸을 살리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야이로는 딸을 위해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각종 병자들을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식일에 그것도 회당에서 병을 고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회당장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해하였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인데,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생명이 위급하지 않은 이상은 안식일에 환자의 병을 고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눅 13:13).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종종 회당에서 환자들을 치료하셨고(마 12:10-13 ; 막 1:21-26 ; 3:2-5 ; 눅 14:1-4 ; 요 5:8, 9), 이로 인해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습니다(눅 13:14 ; 요 5:16).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했다가 회당장의 자리에서 해임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야이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찾아가 간청했습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9:18) 마가나 누가에 의하면 야이로의 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눅 5:23 ; 눅 8:42).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실새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때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혈루증은 비정상 자궁출혈이라고 하는데 자궁에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병입니다. 율법에서는 이 병을 나병처럼 부정한 것으로 규정했는데, 그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 모두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레 15:25, 26). 결국 혈루증 환자는 사회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가족과도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느라 고생을 했고 있던 재산도 다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병만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부정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야이로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즉시 피가 멎었고 그녀는 병이 나은 것을 느꼈습니다. 열두 해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병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나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에게는 부정한 자라는 신분의 장애물이었고, 야이로 역시 회당장이라는 신분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혈루증 여인과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9:34 ; 36).

우리에게도 넘어야 할 신앙의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야이로나 혈루증 여인처럼 신분의 장애물일 수도 있고, 마 19장에 나오는 청년처럼 재물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19:22).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학업이나 직장, 가족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과 말씀하고 계실 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야이로는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시라도 빨리 예수님을 모셔가서 딸이 죽기 전에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는데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이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 사람들은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막 5:39).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은 고치셨지만 죽은 사람까지 살리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마 8:27 ; 막 5: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막 5:36 ; 눅 8:50).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믿음을 계속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만을 데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이들 세 제자들만 데리고 동행을 하셨는데, 일명 변화산 사건 때도 그랬고(마 17: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러셨습니다(마 26:36).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는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시자 집에서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눅 8:52, 53). 그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곧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으시며 "달리다 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하시자 죽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걸어 다녔고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9:26).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요 11:25, 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앙을 견고하게 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을 흔들리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했고, 가나안을 목전에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 때문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 14:27).

본 문 마 10:1-4 2022년 6월 15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열 두명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 6:13).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마 10:5) 이들 열두 명을 가리켜 열두 사도(마 10:2) 혹은 열두 제자(마 10:1)라 부릅니다. 열두 사도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시몬입니다. 가나나인 혹은 셀롯이라고 부르는 시몬과 이 시간에 살펴볼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입니다.

1.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

시몬은 시므온이라고도 하는데(행 15:14) 야곱의 둘 째 아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창 29:33). 그의 형제인 안드레 역시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마 10:2 ; 행 1:13).

베드로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방의 벳새다(요 1:44) 출신으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는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주변의 도시에 따라 긴네렛 바다(수 13:27), 게네사렛 호수(눅 5:1), 디베랴 바다(요 6:1) 등으로 불립니다. 이 호수는 해수면보다 212m 정도 낮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기온의 변화가 심해 자주 거센 바람을 일으키곤 했습니다(마 8:24 ; 14:24 ; 막 4:37 ; 6:48 ; 눅 8:23 ; 요 6:18). 그래서 갈릴리 호수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씨의 변화가 심한 곳입니다. 레슬릭 크릭은 시몬 베드로를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는 베드로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몬 베드로는 나서기를 잘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보다 언제나 앞장서서 질문하거나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성격이 종종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다가 사탄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마16:22, 23).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에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길 수 없다고 하다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청하기도 했습니다(요 13:8, 9). 또 예수님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겠다고 맹세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마 26:70-75).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에는 옷을 벗고 고기를 잡고 있다가 겉옷을 걸치고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가기도 했습니다(요 21:7). 이처럼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처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이는 그가 연약한 사람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 순종의 사람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의 첫 만남은 그의 동생 안드레의 중재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날 세례 요한이 그의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 요한의 말을 듣고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그중의 하나가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먼저 자기 형을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고는,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메시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입니다(요 1:41 ; 4:25).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은 모세를 비롯해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분 곧 메시아(민 24:17 ; 신 18:15 ; 사 11:1 ; 렘 23:5)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마 11:3 ; 요 6:14).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 시대에 누렸던 영화를 되찾아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간 안드레는 그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이 메시아임을 확신했고 형 시몬을 찾아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안드레와는 달리 예수님이 메시아이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가나(요 2:2) 혼인 잔치에 참여도 하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이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계속 따르지 않았습니다. 후에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시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인해 말씀이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근처에 있던 한 배에 오르셔서 그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해 놓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로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방금 전 돌아와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하셨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보통 고기는 어두울 때 잘 잡히고 깊은데 보다는 적당한 깊이에서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밤에 나가 날이 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한 마디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낮에 그것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니 이걸 어찌해야 하나 순간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칠 대로 지쳤고 또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들어서 성경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베드로도 고기잡이에 있어서는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들어 예수님의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목수 출신인 예수님이 어부인 자신에게 고기잡는 법을 가르친다고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금 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깊은 데로 몰고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순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보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이 사건 직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이후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눅 5:11).

3. 반석이 된 사람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첫 만남에서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지만 앞으로는 게바라 부르겠다"고 하셨습니다(요 1:42).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란 뜻이고 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본 시몬을 가리켜 '반석'이라고 하신 것은 그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안드레가 형 시몬을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누구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시몬을 보시고 베드로라 하신 것은 현재의 그를 말한 것이 아니라 장차 미래의 시몬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시몬을 직접 베드로라 부르신 것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눅 22:34).

시몬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반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고 가장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 보기에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는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고한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마 16:16).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반석'이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후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반석과 같은 역할을 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도 믿음이 쉽게 흔들리고 시시각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다가도 신앙으로 인해 어려움이 닥치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가도 어떨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반석 같은데 또 어떨 때는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였고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한 시몬이 변화되어 반석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베드로가 된 것처럼 지금은 비록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사 42:3)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변화될 것을 믿으며 또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본 문 마 10:1-4 2022년 6월 22일
제 목 마태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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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는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안드레와 빌립니다.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벳새다 출신의 어부였습니다(마 4:18). 빌립 역시 벳새다 출신이었는데 그의 직업이 어부였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먼저 안드레와 빌립의 어떤 점이 같은지 살펴보겠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형 베드로를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면서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 갔습니다(요 1:42). 메시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입니다(요 1:41). 빌립도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란 메시아,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고 그의 형과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빌립에게 되묻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사마리아만큼은 아니지만 유대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지역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사렛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로 같은 갈릴리 사람인 나다나엘조차도 무시하는 그런 동네였습니다(요 21:2). 더욱이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사렛이 아닌 그의 고향,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요 7:42).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누구보다도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던 나다나엘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요 1:48). 그런데 나사렛 사람 예수가 메시아라고 하니 나다나엘은 어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이고(마 2:23),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입니다(마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 '나사렛 예수'라고 했고, 빌립 역시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유대지역 사람들에게 천대받던 갈릴리에서 자라셨고, 또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돈 많고 권력이 있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 하나님의 선민이라 으스대며 스스로 의인 인체 하는 사람들보다는 죄에 억눌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마 9:13 ; 막 2:17).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묻는 나다나엘에게 빌립은 "와서 보라"고 하면서 그를 권하여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난 후 빌립처럼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했고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의 권유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요 1:49).

또 빌립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헬라인 즉 유대교로 개종한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을 때 안드레와 함께 그들의 요청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요 12:20-22). 이처럼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안드레와 빌립의 다른 점은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잘 나타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인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사복음서에 전부 기록된 유일한 사건입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인 벳새다로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자와 어린이 외에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마 14:21 ; 막 6:44).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며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눅 9:10-). 저녁이 되어 날이 저물어 갈 때,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기를 원했습니다(눅 9:12). 그곳은 빈들이라 많은 사람들을 먹일만한 음식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 마을들로 가서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마 14:15).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4:15, 16). 이 명령에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을까?' 제자들은 고민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5)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실 일을 미리 다 알고 계시면서도 빌립을 시험하고자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요 6:6). 이에 빌립은 "각자가 조금씩 먹는다 해도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마 20:2)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오늘날로 환산하면 천만 원이 넘는 큰돈입니다. 빌립은 무리에게 먹일 빵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했고, 이백 데라리온의 금액을 산출했습니다. 더구나 빌립은 벳새다(요 1:44) 출신이므로, 그 지방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빌립의 대답은 이 시간에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무리가 먹을 만큼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막 6:37).

이러한 빌립과 같은 사람을 가리켜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거나 또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이것저것 따져 계산해 보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가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반면에 빌립과 같은 사람을 신중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습니다. 반면에 신앙적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신앙에 있어서 신중함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맹신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해 버리는 것 역시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입니다. 빌립과 제자들은 자신의 무능함만 생각했지 주님의 전능하심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을 보았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각종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으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가리켜 '첫 번째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표적이란 어떤 일을 증명하기 위해 행해진 기적이나 이적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표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안드레와 빌립을 비롯해서 혼인 잔치에 참석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요 2:11). 그러면 빌립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하셨을 때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라는 부정적인 대답이 아니라 '주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빵 다섯 개와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수천 명 혹은 수 만명의 사람을 먹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정만 육십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 년 동안 먹이셨습니다(출 16:35).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는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 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빌립과 같은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는 것이었습니다(민 11:23).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눅 18:27).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구원에 관해서 하신 말씀이기는 하지만 다른 문제에도 적용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6:38). 그래서 제자들이 무리에게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빈손으로 왔는데, 안드레는 한 어린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라고 말했습니다.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으로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겠는가' 비관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예수님께 가지고 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안드레는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무시해 버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희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시 39:1). 그래서 항상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겠다고 했습니다(시 71:14).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밝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잠 23:18). 심지어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잠 14:32).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행 23:6 ; 24:15). 세상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갖는 희망은 모든 헛된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소망은 참된 소망이요, 산 소망이요(벧전 1:3), 좋은 소망이요(살후 2:16), 복된 소망이요(딛 2:13), 영원한 소망(고전 13:13 ; 딛 1:2)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딤전 6:17).

본 문 마 10:1-4 2022년 5월 4일
제 목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마태복음 강해)
시 청 YouTube : https://youtu.be/gUz9fOxnjhM
KakaoTv : https://tv.kakao.com/v/43005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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