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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2022. 8. 18.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1장 2절 ~ 6절 [개역개정]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로마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다윗 시대에 누렸던 영화를 가져다 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 사자를 보내어 그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말 3:1). 또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도 했는데(말 4:5), 예수님께서는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1:14).

당시 사람들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메시아가 오시기 전 승천했던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마 17:10).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었는데(마 3:4) 이는 엘리야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왕하 1:8). 또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엘리야를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가 세례 요한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눅 1:17)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사 40:3)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마 11:13, 14).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하신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세례 요한은 '네가 엘리야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요 1:21). 그는 엘리야도 그리스도도 아닌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마 3:3 ; 요 1:22 ; 사 40:3).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명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헤롯을 보통 '헤롯 대왕'이라 부릅니다. 헤롯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장남인 헤롯 아켈라오(마 2:22)는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매를 다스렸고, 그의 동생인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했으며, 이복동생인 빌립(Herod Philip II)이 이두래와 드라고닛를 다스렸습니다(눅 3:1). 안디바는 그의 이복동생인 또 다른 빌립(Herod PhilipⅠ)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막 6:17). 이에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에게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마 14:3, 4).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한 가지를 묻게 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 세례 요한이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백성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막 1:4 ; 눅 3:3).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로,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시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마 3:12).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셨을 때 요한은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고(3:13, 14 ; 요 1:33, 34), 그래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요 3:34)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메시아가 오셨으니 곧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로마와 헤롯 그리고 그들과 타협한 유대의 지도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옥에 갇히고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심판에 대한 어떤 징조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제자들을 통해 들은 예수님의 행적은 심판의 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눅 7:18).

이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시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오시기로 한 그 메시아가 맞느냐'는 질문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인지 의심이 들어 한 질문으로 보기도 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그분이 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질문을 함으로써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요한이 의심하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이 아니라 그분의 사역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즉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가능성은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미루어볼 때 마지막 견해가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도착했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는 여러 병자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쳐주고 계셨습니다(눅 7:21). 그리고 세례 요한의 질문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 5) 그냥 간단명료하게 자신이 메시아라고 대답하시면 되었을 텐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된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심으로써 자신이 그 메시아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의 말씀은 사 35장과 61장의 일부분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 6)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 2)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의 회당에서 사 61:1, 2의 말씀을 읽으셨는데 누가는 그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 19)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것들입니다(참조, 사 29:18 ; 사 35:5, 6; 61:1). 따라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이며,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 곧 메시아로서의 사역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죽은 자까지 살리신 이적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막 5 ; 눅 7 ; 요 11).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영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볼 때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자가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던 자들이 그 말씀을 깨달으며,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죄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마 1:21). 그런데 세례 요한은 현재 예수님의 모습과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다른 데서 그분의 사역에 대해 의심을 품었습니다.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로마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다윗 시대에 누렸던 영화를 가져다주는 메시아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게 해주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으며, 혹시나 해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도 그를 등지고 말았습니다(요 6:66). 이들처럼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오해를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실족하게 됩니다(마 11:6). '실족하다'는 말은 '길 가는 도중에 어떤 것에 부딪쳐 넘어지거나 비틀거리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의심을 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에 대해 오해 혹은 의심하지 않으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그분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으로, 구약의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라는 이름과 같은 뜻입니다. 이 이름은 당시에 흔했지만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예수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마1:2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우리를 죄와 허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롬 3:23). 그러기에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히 4:15)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3:16 ; 행 16:31 ; 롬 1:16 ; 10:9, 13 ; 엡 2:8). 그런데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며 또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았기에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많으니 어느 쪽을 택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행 16:31).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마 16:16). 예수님이 나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 즉 예수님만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 10)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퀴리오스'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권위에 대한 존경의 호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창 23:6 ; 24:18 ; 42:10 ; 43:20).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이유로 '여호와' 혹은 '야훼'라는 이름 대신 '아도나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이 칭호가 같은 의미의 '퀴리오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퀴리오스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었습니다(마 22:44). 그런데 이방인들 역시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왕에게도 이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와 하나님이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르도록 강요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주로 시인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요 세상의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분명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오실 그 이' 곧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그 메시아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한 민족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였습니다. 누구든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요 3:16),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요 14:6 ; 행 4:12).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바로 알고 믿을 때 우리는 실족하지 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