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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2022. 12. 8.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7장 14절 ~ 20절[개역개정]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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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과 함께 갔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더불어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논쟁하느냐'고 물으시자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나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외아들(눅 9:38)이 어릴 때부터(막 9:21) 귀신이 들려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했으나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들린 아이는 말을 못 하고, 뇌전증이라고 하는 간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경련이 일어나 불 속으로 넘어지기도 하고 물속에 빠지기도 하는 등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이고, 예수님이 안 계시자 제자들에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능히 고치 못했습니다.

사정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하시면서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걸까요?

첫 번째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의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 격언에서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할 때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라고 할 만큼 겨자씨는 크기가 매우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그런 믿음조차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종종 이러한 믿음 없음에 대하여 예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8:26 ; 16:8 ; 눅 8:25).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마 16:16). 그러나 귀신을 쫓아내는 믿음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역성경에는 마 17장이 21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을 (없음)이라고 표시했습니다('절없음'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리라'가 있음" 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는 말씀 대신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막 9:29). '이런 종류'란 귀신들을 말하는 것인데, 귀신들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쫓아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을 받았습니다(마 10:1 ; 막 6:7). 그리고 실제로 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막 6:13). 그런데, 여기서는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은 한번 받으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시 62:11)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이 유지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 바로 기도입니다(빌 4:13). 무엇이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고 기도하지 않았고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 5:17). 믿음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 대상은 서기관들입니다.

당시 율법학자였던 서기관들을 비롯해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그 주변을 늘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제자들은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제자들의 무능을 비난하며 조롱했을 것이고, 여기에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불신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자들을 비롯해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요 2:23)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좀처럼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거나(막 3:22)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막 3:30). 그들의 입장에선 안식일 규례를 범할 뿐만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죄 사함을 선포하는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여겼습니다(마 9:2, 3 ; 막 2:7 ; 눅 5:21).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눈엣가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들과 달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는데(요 6:14), 바리새인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목격한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해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서가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니 그런 일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입니다(마 9:34). 그들은 마치 양심에 화인 맞은 것처럼(딤전 4:2) 마음이 너무 굳어져 어떤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믿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믿으려 하지 않고 진리를 거역하며 왜곡시키는 영적 장애인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대상은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와 무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시자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때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자 아이는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면서 뒹굴었습니다(눅 9:20). 예수님께서 "이 아이에게 언제부터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시자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막 9:22).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기 아들을 위해 하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아이의 아버지는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의 스승인 예수님마저도 의심을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수님을 의심한 것은 실패한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막 9:23).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즉각 큰 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다'라고 해 놓고, 또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믿는다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입니까?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는 확신을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믿는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제자들은 못 고쳤는데 과연 예수님께서는 고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무리를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며 "말 못 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하여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막 9:26). 이제 더 이상 아이는 귀신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의 가족은 아이 때문에 슬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로소 그 가정에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 앞에 귀신도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막 16:17)이라고 하신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병든 자를 고치기도 했습니다(행 5:16).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마귀가 세상의 것들로 우리를 유혹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걱정이나 근심이 찾아오고, 의심이 생길 때 예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심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랜 한 사람도 때론 안 믿어지고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느 사모님이 몸이 허약해서 늘 근심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하고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사모님은 혹시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몹시 불안했습니다. 남편인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했지만 사모님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결과를 알아보려고 병원에 갔습니다.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사모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사람인 의사의 말은 쉽게 받아들이면서 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느냐'고 했답니다.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의심은 믿음 없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는 것이고, 의심이 생긴다는 것은 곧 믿음이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14:31).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처럼(약 1:6) 또 두 마음을 품은 것같이(약 1:8) 갈피를 못 잡고 헤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이적을 보았고 자신들도 직접 그런 체험을 했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이 생길 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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