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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예음TV/주일예배설교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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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8장 1절 ~ 7절 [개역개정]
1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 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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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쫓기는 사울과 다윗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처지는 달랐지만 그들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똑같습니다. 둘 다 신앙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신앙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신앙 밖에 있다고 해서 다 잘못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욥처럼 신앙 안에 있어도 고난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 73편에 나오는 악인처럼 신앙 밖에 있어도 만사형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사울은 분명 신앙 밖에 있었고 그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다윗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했습니다(27:2). 전에도 가드 왕에게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다가 쫓겨났었습니다(21:15). 그런 수모를 겪었음에도 또다시 갔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육백 명의 군사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2~3 천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도피생활을 계속하다가는 결국 붙잡히게 될 것이라 생각한 다윗은 수모를 무릅쓰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습니다. 사울에게 붙잡혀 죽느니 차라리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기스는 다윗의 일행을 순순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동안 다윗이 계속 사울에게 쫓겨다닌 것과 처음과는 달리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왔다는 점에서 다윗이 사울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잘만 하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자신의 신복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아기스는 최대한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거주할 성읍을 달라고 요청했을 군말 없이 시글락을 내어 주었습니다.

다윗은 시글락에 거주하면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노략했습니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윗은 그곳 사람들을 하나도 살려 두지 않고 모두 죽였습니다. 이들은 블레셋보다는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기스는 분명 다윗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블레셋에서 추방당하고 또다시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을 우려한 다윗은 이 사실이 아기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그곳 사람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스에게는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을 침노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네겝은 남부라는 뜻으로 그술과 기르스와 아말렉은 유다 남부 지역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다 네겝을 침노했다고 한 다윗의 대답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을 숨기고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한 말이므로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일 년 사 개월을 블레셋에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이 지은 시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기간이 다윗에게는 기도와 찬양이 메마른 시기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다윗은 신앙적으로 연약한 상태에 있었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다윗이 신앙 밖에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두 번의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첫 번째 위기는 다윗이 블레셋 편에 서서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으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참전을 요구합니다. 다윗은 아기스의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다소 애매한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28:2).

대부분의 번역본은 이를 긍정적인 답변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아기스 역시 다윗이 자신의 요구에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윗을 자신의 머리 지키는 자 곧 시위 대장으로 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의 왕을 호위하는 일을 맡게 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시적으로나마 신앙 밖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피해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 나라, 그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에 망명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끝까지 이스라엘 땅 곧 신앙 안에 머물러야 할 다윗이었지만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신앙 밖으로 나가 세상과 타협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신앙 밖으로 나가면 더 큰 고난과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신앙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신앙 밖에 있었던 사울에게 찾아온 위기입니다. 사울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해 진 친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꿈, 우림, 예언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미래에 일어나 일들에 대하여 꿈으로 보여 주셨고(창 37장) 야곱이나(창 28:12-15 ; 31:11-13) 솔로몬도(왕상 3:5-14 ; 9:2-9)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신약시대에도 꿈은(마 2:12, 13, 22) 예언과(롬 12:6 ; 고전 14:1) 함께 여전히 계시의 한 방법입니다(행 2:17). 그러나 꿈이나 예언 중에는 거짓도 많고(렘 29:8, 9) 별 의미없는 것들(전 5:3)도 있기 때문에(렘 23:25, 26), 그것을 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쫓다 보면 잘못된 신앙에 빠지기 쉽고 또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불순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완전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연연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전도서 기자의 말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전 5:7).

사울은 평상시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대상 10:14). 그는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는 사람에게 인기 얻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위에 오르기 전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길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15:17).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는 불신앙의 사람으로 변해갔고, 끝내는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완전히 신앙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도 있었지만 살리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15:23).

그런 그가 위기를 만나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만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가까이 계실 때에 불러야 했었는데(사 55:6)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15:26 ; 16:14). 그러자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전에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냈던 사울이(28:3) 일이 다급해 지자 도로 찾게 된 것입니다. 신접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물어보는 영매입니다(신 18:11). 이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로서 그들을 따르는 것은 곧 귀신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엄히 금하셨습니다(레 19:31 ; 20:6).

사실 귀신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알 수 있지만 장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래의 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당이나 점쟁이 혹은 영매를 찾아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귀신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찾아다님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 19:31).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께 구해야지(사 8:19) 귀신을 찾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신전합 여인을 찾았습니다.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어떻게 하면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을지 또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접한 여인이 엔돌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사울은 들키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그곳으로 가서 자신이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고 청했습니다. 여인은 과거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멸절시킨 일을 언급하며 왜 자신을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하려는 것이냐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이 일로 그 여인을 해하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있으니 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이는 사울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범하기 쉬운 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다거나 아무 의미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이름을 다른 우상들의 이름과 함께 부르거나 농담에 사용하는 것, 지나가는 말로 아무 의미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입니다. 농담으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사울은 누구를 불러 올리랴는 여인의 물음에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했고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 여인은 비로소 변장하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사울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신접한 여인이 정말 사무엘의 영을 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실제로 사무엘의 영을 보았다는 견해도 있고 신접한 여인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거나 귀신이나 사탄이 사무엘처럼 가장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 선지자가 실제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신접한 여인의 주술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하에 악한 영을 사용하셨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신접한 여인이 본 것은 진짜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그를 가장한 마귀의 영이며 이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살길 만을 도모하며 자기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는 사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한 방법으로 악한 영을 사용해서 그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블레셋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31:6). 역대기 기자는 사울이 죽은 이유에 대해 그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대상 10:13, 14). 사울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말로가 어떤 지를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과 사울은 신앙 밖에 있다가 모두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다윗은 신앙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피하고자 신앙 밖으로 나갔고 사울은 세상의 욕심 때문에 신앙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에게 신앙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었지만 사울은 그 기회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큰 위기에 봉착하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니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움직였던 사울,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는 사람에게 인기 얻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울은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윗 역시 신앙 밖으로 나갔다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신앙 안에서 겪는 고난이 심히 크고 두려워서 잠시 신앙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다윗처럼 신앙으로 겪는 고통이 힘들어 잠시 신앙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사울처럼 세상의 욕심과 쾌락 때문에 신앙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 안에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잠시 신앙 밖으로 나갔다 할지라도 다윗처럼 다시 신앙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 합니다. 사울처럼 신앙 밖에서 머물다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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