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ἐν/성경이야기

성경의 비유 : 씨 뿌리는 자

yeum 2021. 7. 21.

이 비유는 요한복음을 제외한 복음서들[각주:1] 에 모두 등장하는 유일한 비유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3-9)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 혹은 '천국 말씀'(마 13:18)이며 씨를 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것(막 4:14) 즉 말씀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씨가 뿌려진 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은 말씀을 들은 자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막 4:15 ; 눅 8:12).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씨를 뿌리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이 손으로 씨를 뿌리는 것인데 이때 뿌려진 씨는 바람에 날려 여러 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어떤 씨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에 밟혀서 다져졌기 때문에 그 위에 떨어진 씨앗은 땅 속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와 먹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합니다(눅 8:5). 길 가와 같은 자들은 말씀을 듣지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니 말씀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악한 자 곧 마귀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눅 8:12).

뿌려진 씨 가운데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석회석 위에 흙이 얇게 덮여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곳에 떨어지는 씨는 돌의 온기에 의해 싹이 쉽게 나오기는 하지만 흙이 얇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습기도 없기 때문에 계속 자랄 수 없습니다. 이 돌밭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으로 인해 시련을 당할 때(눅 8:13) 쉽게 신앙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마 13:21). 냄비 같은 신앙이라 할까요? 이런 돌밭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일시적인 신앙의 사람으로 ‘잠깐 믿다가’(눅 8:13) 다시 말씀을 듣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결국 그들에게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가시떨기[가시나무]는 ‘열매가 없어서 쓸모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기후가 건조한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긴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 신앙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돌밭에 뿌려진 씨보다는 더 낫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매가 없다는 면에서는 똑같습니다. 세상적인 염려들은 신앙의 성장에 큰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영혼들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마실까’(눅 12:22)하는 현실에 더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관심 역시 신앙생활에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신뢰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현실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재물 역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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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뿌려진 씨 가운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여기서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마 13:23)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굳게 간직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클레이(Barclay)는 ‘좋은 땅’이란 선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해서 듣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참뜻을 발견할 때까지 숙고하며 자기가 들은 것을 행동이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헤세드·레마 주석 참조. 그러한 자들은 언제나 말씀을 들을 때에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바쁘다고 핑계하지 않고 언제나 듣고자 하며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힘씁니다. 시련을 당할 때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눅 8:14 ; 마 7:25). 끝까지 말씀을 지키어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백배의 결실을 맺고 육십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나 삼심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충실히 맺기만 하면 모두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9)라는 엄숙한 주의를 주시므로 비유의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성경에서 ‘귀’는 이해와 아울러 순종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순종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또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눅 6:46-49).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열매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시 126:5). 뿌려진 씨앗이 모두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유사점이 많고, 거의 같은 관점에서 쓰였다고 해서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 부릅니다. ‘네이버백과사전 : 라이프성경사전’, “공관복음” 항목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