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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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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11절 ~ 22절[개역개정]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설교문 보기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증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이란 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히 5:10 ; 6:20). 멜기세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과 그의 제사장직에 관해 설명하려고 해도 히브리서 독자들의 신앙이 그 설명을 이해할 수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그들에게 성숙한 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했습니다(히 6:2). 신앙의 초보 단계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멜기세덱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멜기세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이십니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2절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의의 왕’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었는데(창 14:18), 살렘은 ‘평화(평강)’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인 동시에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셨고(렘 23:6), ‘평화의 왕’(사 9:6)으로 불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의 왕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권한을 받아(요 5:22, 27)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시 9:8 ; 계 19:11).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겉모습만 보고 심판하지 않으시며, 귀에 들리는 대로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사 11:3). 모든 일을 공정하게 판결하시며(시 98:9 ; 사 11:4), 정의로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사 32:1).

또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서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엡 2:16), 사람이 서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엡 2:14). 화평이란 분쟁이나 다툼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평화 혹은 평안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화목이란 화평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 말속에는 화해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화해란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애는 것을 말하는데,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이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아담이 죄를 범한 이래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상태를 가리켜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라고 했습니다(롬 5:10). 죄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원수 상태에 있는 사람과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관계의 회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상태에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죄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 3:9, 10).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사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롬 5:10 ; 요일 4:1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롬 5:1).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안을 얻게 됩니다(요 14: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이며 불안정합니다.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영원한 것으로, 세상의 모든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입니다.

2.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을 가리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했습니다(히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말은 원래 법률적으로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즉 사생아나 천한 신분의 사람을 일컬었습니다. 그렇다고 멜기세덱이 사생아나 천한 사람은 아닙니다. 또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말은 때때로 신적인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현현이나 천사로 보기도 합니다. ‘현현(顯現)’이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기 전에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말은 단지 성경에 그의 부모나 족보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중요시했는데, 멜기세덱의 혈통에 관한 기록 즉 족보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는 말 역시 멜기세덱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기록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이 레위 계열의 제사장직과는 달리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으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히 7:17). 이는 결국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였던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멜기세덱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롬 4:11 ; 갈 3:7). 창세기 14장에 보면 멜기세덱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자 아브라함이 전리품 가운데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창 14:19, 2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것은 그가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자임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축복은 낮은 자가 높은 자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히 7:7). 그리고 아브라함이 전리품 가운데 십 분의 일 즉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준 것 역시 그가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즉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십 분의 일을 바칠 정도로 멜기세덱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히 7:4). 레위 제사장들도 십일조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받은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 바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당시에 레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이미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7:10). 이로 볼 때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레위 계통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해 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어찌하여 아론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묻습니다(히 7:11). 이는 율법과 연관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 것만 깨끗하게 할 뿐 내적인 양심은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 9:9). 그래서 율법 곧 옛 계명들은 폐지되었고 대신에 더 좋은 소망인 새 언약이 주어졌습니다(히 7:19). 이 언약은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으로(눅 22:20)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습니다(히 9:14).

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 곧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히 7:20)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히 7:22).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며(히 9:15)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분명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 아닌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습니다(히 7:14). 그럼에도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히 5:10). 우리는 의의 왕이시면서 평화의 왕이신 그리고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유일한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더 예수님을 의지하고 가까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돕고 계십니다(히 7:25). 우리는 더 좋은 소망을 주시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