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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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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절 ~ 13절 [개역개정]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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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는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와 함께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실수입니다(신 8:8 ; 약 3:12). 특히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처럼 여겨질 정도로(시 80:8) 이스라엘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포도는 중요한 식량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보통 7, 8월에 수확하는데, 지역에 따라 빠르면 6월에서 늦게는 10월까지도 한다고 합니다(레 26:5). 포도를 수확하면 일부는 햇볕에 말리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건포도는 쉽게 상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즙을 내어 항아리에 보관했습니다(삼상 25:18 ; 삼하 16:1). 포도는 당과 효모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 새로 담근 포도즙은 자연적으로 발효하기 때문에(마 9:17) 시간이 지나면 알코올 성분을 가진 포도주가 됩니다. 포도주는 제사 때 제물 위에 붓는 전제(奠祭, 출 29:4)로 쓰였고, 잔치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요 2:3). 또 평소 식사 때도 포도주를 마셨습니다(마 11:19).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물은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간 탈이 나기 십상이었습니다(딤전 5:23). 그래서 포도즙을 물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포도즙이 쉽게 발효되므로 부득이 포도주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때 물을 섞어 마셨다고 하니 쉽게 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기름과 더불어 상처를 치료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눅 10:34). 이처럼 포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나무요 열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비유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은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만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면 다른 가지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은 그 가지가 죽은 것을 의미하므로 농부는 그 가지를 제거하고 산 것들은 잘 손질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요 15:2). 그리고 제거된 가지는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땔감으로 사용합니다(요 15:6). 이는 마치 맛을 잃은 소금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과 같습니다(마 5:13).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전에 먼저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핍니다. 사실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습니다. ‘꽃이 없는 열매’란 뜻의 무화과(無花果)도 실은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커져서 꽃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므로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꽃이 지면서 포도가 맺히고 서서히 자라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영급니다. 그런데 만일 가지에 새순이 돋지 않거나, 새순이 돋은 후에 꽃을 피우지 않으면 그 가지는 죽은 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도 그와 같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히 변하지는 않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점점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신앙도 그렇게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고전 13:11).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있는 가지에 열매가 맺는 것같이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열매가 없다면 그는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은 죽은 자에 불과합니다(계 3:1). 죽은 가지에 열매가 맺지 못하는 것처럼 죽은 믿음을 가졌기에 신앙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약 2:15).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결국은 제거되고 밖에 버려져 불에 태워지는 것처럼(요 15:2),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도 결국은 그와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칼뱅은 그들이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선택받은 이들은 결코 그러한 운명을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22:14). 그러면,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열매를 맺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포도 열매는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에 맺힙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요 15:4, 5).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5:10)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요 13:3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같이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요 15:12). 이는 새 계명이지만 옛 계명이기도 합니다(마 22:37-40).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곧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심으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요일 3:16).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 곧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 된 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요 15:13).

요한은 그 구체적인 실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 18) 여기서 ‘보고’는 잠깐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성도를 보고서 도와줄 형편이 있음에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요한은 그런 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요일 3:10).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5-17)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의 특징은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마 25:40). 그것이 곧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요 13:35).

분명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엡 2:8, 9). 그런데, 왜 실천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바늘과 실, 영혼과 몸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서로 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행함을 통해 그 믿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약 2:18). 유대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랍비가 학생들에게 기도문을 외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외우기는커녕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랍비는 그 학생을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후에 랍비는 그 학생이 비록 기도문을 외우진 못했으나 기도문에 나와 있는 대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아픈 자를 간호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랍비는 기도문을 암기하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요 15:8). 하나님의 영광,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3. 열매를 맺는 자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5:7). 진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들이 원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게 될 것이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5:14, 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있는 가지에 새순이 돋는 것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6). '착한 행실'이란 곧 신앙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참 빛이시므로(요 1:9)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요(마 5:14) 빛의 자녀들입니다(요 12: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들답게 행동해야 합니다(엡 5:8 ; 요일 1:7). 그것은 곧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엡 5:9). 이러한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며(벧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기도 합니다(요 15:16). 풍성한 열매가 농부의 기쁨이 되는 것처럼, 성도의 열매는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열매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돌이켜 회개하고 신앙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계 3:3). 그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