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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앙/성경이야기

헬라어의 사랑

2016. 2. 14.

사랑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건적인 사랑,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지요(요일 3:18).

© Photo by Yeum

헬라어(Ancient Greek)에서 사랑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 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ἐρως)', 가족 간의 사랑인 '스트로게(스톨게, στρογή)', 친구간의 사랑인 우정을 나타내는 '필리아(φιλία)'[각주:1],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곧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ἀγάπη)' 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보면 두 가지의 사랑이 나옵니다.

예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 :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 : 내 양들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 : 내 양들을 먹이라.

이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아가페'[각주:2]로, 베드로는 '필리아'[각주:3]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가페와 필리아 두 낱말에 대해서 별 차이 없이 사용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각주:4] 이를 구별해서 사용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후자의 입장에서 이 대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대화

예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가페)하느냐?
베드로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가페'적인 사랑, 곧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인데,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 곧 친구간의 우정을 나타내는 '필리아'로 대답을 했습니다.

두 번째 대화

예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냐?
베드로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두 번째 대화는 첫 번째 대화와 거의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가 아닌 예수님과 베드로 자신 사이의 관계를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대화

예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필리아)하느냐?"
베드로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세 번째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아가페'로 묻지 않으시고 '필리아'로 묻고 계십니다. 즉 "네게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질문을 LB(Living Bible)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Simon, Son of John, are you even my friend? ". 이 질문에 베드로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자신이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있는지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대개 남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니, 어떻게 보면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마 5:46)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지요. 그런데, 이 사랑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가페의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1. '필리아'는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마 10:37). 사랑에 대한 헬라어 네 가지를 언급할 때 '필리아'를 '필레오(φιλέω)' 혹은 '필로스(φίλος)'로 표기하는 곳이 있습니다. '필레오'는 '사랑하다'(v)이고, '필로스'는 '친구'(n, 여자 친구는 '필레, φίλη') 혹은 '사랑하는'(adj)이란 뜻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명사(n)에 대하여 언급할 때는 '필리아'를 사용해야 합니다. 참고로 공동체에서의 형제 · 자매에 대한 사랑brotherly love은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롬 12:10 ; 살전 4:9 등)입니다. [본문으로]
  2.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는 동사형인 '아가파오(ἀγαπάω)'입니다. [본문으로]
  3.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는 동사형인 '필레오'입니다. [본문으로]
  4. D. A. Carson은 요한복음 3장 35절(아가파오)과 요한복음 5장 20절(필레오)을 비교하면서, 같은 사상을 반복하는 두 구절이 서로 다른 사랑이란 동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뜻에는 어떤 눈에 뛸만한 변화가 없다고 말합니다(D. A. Carson, 성경해석의 오류, 박대영 역, 서울 :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본문으로]